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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목소리(3)

 

원작: オトノコエ 세우(せう)지음

원출처: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2798098

번역: (ei-nyong.tistory.com)

 

 

65일째

 

오랜만에 느긋하게 지낼 수 있는 휴일. 

직장에서는 휴일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으니 나를 부를 일은 없으리라.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오늘은 좋아하는 일들을 할 수 있는 날.

 

시각은 오후 3. 일어나기엔 너무 이른 시간.

휴일에는 하루 일과로 변한 산책을 하러 나선다.

 

봉투 안에는 빵과 우유.

한 손에 토마토 주스를 들고서 밖으로 나간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요 며칠간 일어났던 일들을 되돌아본다.

며칠 전 병원에서 만난 여자아이.

 

그 아이는 분명 예의 말동무일 것이라고 내 멋대로 결론을 지었다.

이유는 이것 저것 있긴 하지만 제일 큰 이유라면 직감.

 

소리도, 목소리도, 틀림없는 그 소리였다.

그래서 그 다음 날부터는 돌아가는 길에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참패.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않는데다 말도 걸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단호한 방법으로 나가보려 한다.

사실 난 안달복달하는 거 질색이라고.

 

이전 같은 상황이라면 몰라도, 형태가 있는 상대란 걸 안 이상 이야기는 달라진다.

 

얼굴 좀 비쳐봐, 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다.

 

 

 

 

 

 

언제나 마주치는 모퉁이를 지나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변함없이 인사를 건넨다.

 

안녕, 잘 잤어?

 

상대방도 변함없이 소리로 대답한다.

그대로 길을 걸으며, 오늘은 가는 길에 빵을 놓지 않았다.

 

나는 토마토 주스를 후루룩거리며 걸어간다.

 

평소라면 이미 빵과 우유를 주었을 시점.

뒤에서는 의문을 품은 소리가 작게 터졌다.

 

왜 그래? “

 

그런 소리로 돌아올 리 없는 질문을 던지지만 쓸데없는 짓이란 건 알고 있다.

초조해하는 소리를 모른 척하며 쓸데 없는 잡담을 계속한다.

 

편의점에서 돌아와 조금만 더 가면 언제나 지나치는 모퉁이길.

 

 

너는 모르겠지만.

난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너를 보고 싶어.

목소리를 듣고, 모습을 보고, 대화를 하고 싶어.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한 의논상대로 만나는 건 이제 그만 두고 싶어.

이런 한밤중에 어린이가 나다니는 이유 같은 건 알 수 없다.

애초에 평범한 어린애인지도 알 수 없다.

전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잡담을 도중에 그만두고서, 갑자기 뛰어나가는 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봉지를 흔들며 달려가다.

 

 

깨달은 것.

그 아이는 이 길을 지나는 동안만큼은 곁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언제나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단순한 방법 밖에 생각해내지 못하는 정도에 난 참을성에 한계를 느꼈다.

 

 

달려가는 내 뒤로 평소의 신비한 소리가 아닌 소리가 들린다.

작은 발소리처럼 들리는 그것은 내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의문과 초조함이 엿보이는 소리도 간간히 들려오고, 달려간 앞에는 언제나 마주치는 모퉁이.

 

속도를 늦추지 않고 모퉁이를 돌아 거기서 급 브레이크.

헉헉댈 정도로 호흡이 거칠어졌지만, 잠깐의 틈도 주지 않고 돌아서며 그 때의 감촉을 기다린다.

 

하고 배에 충격이 오는 것과 동시에 끄응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넘어져버리기 전에 손을 뻗어 반동으로 튕겨져 나가는 아이를 확실하게 두 팔로 붙잡고서, 혹시 모르니까 끌어 안는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고 망설임과 놀람으로 흔들리는 예쁜 눈동자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 날과 같은 아주 심플한 하얀 긴 소매와 긴 바지를 입었다.

사이드 포니테일은 변함없이 대롱대롱 흔들린다.

 

틀림없는 그 아이.

 

잡았다

 

내 목소리에 도망가야 해라고 생각했는지 가볍게 날뛰는 것을 끌어 안는 팔에 약간 힘을 주고서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

 

정말이지, 두 달이나 넘게 기다렸단 말야.

오늘은 놓치지 않을 테니까.

 

한참 동안 도망가려던 몸짓도 시간이 흐르자, 단념하고서 냉정해지기로 했는지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어린애를 안아보는 적은 거의 없었지만, 이 아이는 특히나 가벼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식사는 제대로 하는 걸까? 항상 주는 빵 말고 다른 것도 먹어야 할텐데.

 

, 호노카 짱, 맞지?”

 

고개를 끄덕이고서 약간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딱히 화난 것도 아니고, 기분 나쁜 감정을 품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말할 수 있지? 내 이름, 알지? 기억하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던 그 눈동자가 위를 향하다 옆을 향하다 가끔씩 나를 보기도 하더니.

이윽고 다시 나를 뚫어져라 보며.

 

마키 짱

그래. 내 이름은 마키니까. 잊지 말고 기억해줘

 

씩씩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자 괜스레 기뻐서 쓸데없이 강한 힘으로 끌어 안았다.

약간 괴로워하는 것 같았지만, 약간 기쁘게 웃는 모습에 나 역시 기쁘다.

 

 

그제서야 안고 있던 아이의 상태를 깨달았다.

 

에 어째서 맨발이야!?

 

아니 그렇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 오히려 내가 궁금해지잖아.

자세히 보니 옷은 더럽혀져 있고, 눈에 띄는 부분만 해도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많아 보였다.

 

대체 어떤 생활을 하길래 이렇게 되는 걸까.

요전에 병원에서 만났을 땐 전혀 못 느꼈는데.

 

집은 어디야?

?”

 

그래, 호노카 짱네 집 말야.

 

또다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무언가를 생각한다.

작게 하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작은 손을 모퉁이를 향해 가리킨다.

 

저 쪽에 집이 있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더니 다시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설마 모퉁이에 살고 있어요라든가 그쪽 길에 살고 있어요같은 소린 아니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이런 상태가 될 정도의 환경이라면.

애초에 굳이 돌려보낼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호노카 짱, 집은 어떤 곳이야?

「몰라」

 

정말로 모른다고 말하는 듯한 얼굴은 미묘하게 쓸쓸해 보여서.

 

쓸쓸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집에 돌아가도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쓸쓸하다면 쓸쓸하다.

 

만약 여기서 이 아이와 헤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한번 붙잡혀버린 상황을 생각하면, 다시는 만나러 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 두번 다시 만나지 못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렇게 걱정을 하다보니, 당사자 본인은 나의 한쪽 손에 늘어진 봉지에서 부스럭거리며 빵을 찾기 시작했다.

봉지에서 빵을 꺼내 들어 보이자, 눈을 반짝이며 양손을 주세요라고 말하듯 쭉 내민다.

내민 양손에 빵을 놓아 주자, 퐁 하고 봉투를 열자마자 한입 가득 입에 넣고 볼을 부풀렸다.

 

 

애를 안는 게 힘든 일은 아니니까.

아이는 빵을 필사적으로 입 안에 넣는데 집중하고 있고.

 

봉지에서 우유를 꺼내어 빨대를 꽂아 주려 했지만 역시 어린애 하나를 안은 채로 꽂기는 힘들다.

빨대를 문 입을 삽입구를 향해 쭉 뻗어 멋지게 꽂아, 볼 안에 빵을 채우고 있는 아이에게 건네 본다.

 

양손으로 빵을 쥐고 있는 탓에 우유팩을 잡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병원에서 봤을 때와 겹쳐 보인다.

 

한 손으로만 빵을 잡으면 돼.”

!”

 

굉장한 걸 발견했다는 표정으로 빵을 놓은 한 손을 쭉 뻗어 우유를 건네 받는다.

쿠루룩 우유를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사는 맨션으로 발길을 돌린다.

 

입구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타고서 버튼을 누르고.

문이 닫힐 즈음에 빵과 우유에 정신이 팔려있던 하늘색 눈동자가 이쪽을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빵에 대한 감사 인사 대신에, 내가 하는 말 들어줄래?”

 

의외로 시원스레 돌아온 대답에 약간 놀랐지만 엘리베이터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어느덧 내 방 앞이다.

열쇠를 꽂은 문이 열리자 보이는 것은 익숙한 우리 집 현관.

 

난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

 

감사 인사 대신이라면서 하는 말이 고맙다는 인사라니.

눈 앞의 어린 얼굴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문을 열고 현관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내 안의 남은 마지막 무언가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막고 있다.

 

 

 

 

바깥 세상과 방 사이의 경계선.

현관은 경계선이라고 옛날에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지만.

 

이제야 그것을 통감한다.

 

이 경계선을 넘으면.

나는 무엇을 넘으려 하는 걸까.

 

 

안면부지의 여자아이.

아는 거라곤호노카라는 이름뿐.

 

이건 범죄에 해당할까.

이건 흔히 말하는 유괴랑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어린애 하나가 밤중에 나돌아다닌다고 해서.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마음대로 데리고 와버리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잘 알고 있으면서.

 

마키 쨔?

앗…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한걸음 내딛었다.

이제 그곳은 나만의 공간이다.

 

등 뒤로 손을 뻗어 문을 닫고서.

꼼꼼하게 문을 잠그고서.

 

계속 안고 있던 작은 몸을 현관 앞 마루에 내려놓는다.

오도카니 서서 나를 바라보는 하늘색 눈동자는 어두운 현관에서는 진청색으로 보여서, 내가 좋아하는 예쁜 밤하늘 색 같았다.

 

 

허리를 살짝 구부려 눈높이를 맞추고서 익숙하지 않은 미소로, 온 힘을 다해 다정하게 말한다.

 

호노카 짱, 앞으로 잘 부탁해

 

순간 고개를 숙이는가 싶더니, 다시 아까와 같은 몸짓과 이리저리 헤매이는 시선은 멍하니 무언가를 생각하는 기색이다.

조금 있다가 원래 자리를 찾은 시선의 눈동자는 똑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사람을 의심할 줄 모르는 듯 솔직하고 투명한 눈동자에는 내 자신이 비치고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려 뻗은 내 손은 조금이지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쓰다듬어 준 그 얼굴은 기쁜 듯 수줍게 웃고 있었기에.

 

나도 매일 같은 인간관계 속에서 잊고 있었던 자연스러운 미소를 조금이나마 머금을 수 있었다.

 

 

 

 

 

 

선선해진 가을 무렵.

 

단 한번도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매일 일해 왔다.

앞으로 사람을 계속 구원하는 길을 걸어나갈 내 자신은.

 

오늘 경계선을 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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