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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목소리(2)

 

원작: オトノコエ 세우(せう) 지음

원출처: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2791754

번역: (ei-nyong.tistory.com)

 

 

45일째

 

아무도 없는 방. 책상을 마주보고 앉아 컴퓨터에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데이터를 입력해 나간다.

오늘은 일찍 귀가를 할 수 있는 귀중한 날이다.

 

직장에서 나왔을 땐 이미 저녁. 집으로 돌아가면 회사에서 가져 온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한다.

잠깐씩 쪽잠을 자면서 체력을 회복시킨다.

 

시계 바늘도 어느덧 오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막차도 끊기고 인파가 완전히 사라질 무렵.

 

 

냉장고에서 우유팩을 집어 들어 비닐봉투에 넣는다.

낮에 빵집에서 사 둔 맛있는 빵과 함께.

 

 

집에서 바로 꺾이는 모퉁이를 돌면 거기엔 눈에 보이지 않는 말동무가 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 편의점 쪽으로 난 길을 더듬어가며 입을 연다.

 

안녕. 잘 지냈어? ”

 

자그마한 소리가 잘 지냈어라고 대답하는 걸 듣고는 안심한다.

결국, ‘목소리를 들은 날 이후 다시 그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은 없었다.

 

지금은 어떤 목소리였는지 모호해져 버릴 정도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마음이 편해지는 목소리였다는 정도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만능이 아니잖아 하고 한탄하듯 생각했다.

 

우리들이 만난 지 벌써 한달 반 정도나 됐어. 목소리 정도는 들려주면 안 돼? “

 

천천히 걷는 내 등 뒤에서는 초조해하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분명 대답하기 힘들다는 뜻이겠지.

소리를 분간하는 데엔 자신이 있었다.

 

뭐 힘들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봉지에서 꺼낸 빵과 우유를 길 바닥에 놓고서 다시 나아간다.

뒤에서는 바스락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줍고 있는 소리.

 

파스락 하고 들린 것은 봉지를 여는 소리.

콕 하고 들린 것은 빨대를 꽂는 소리

쿠르륵 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아아 다행이다하고 대상을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밤길, 편의점까지, 그리고 집까지 왕복 1시간 정도의 길을 걷는다.

드물게 불평 한 마디 없이 오늘의 산책을 마쳤다.

쓸데없는 세상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주절대다 끝나버리긴 했지만.

언제나와 같은 모퉁이, 오늘은 이미 줘버려서 여기서 줄 빵은 없지만 돌아보고서 작별 인사를 한다.

 

그럼 내일 또 보자. 잘자.

 

그대로 모퉁이를 꺾었을 때.

평소와는 다른, 엷게 스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감정에서 나온 소리인지는 아직은 나로서도 알 수 없었다.

 

 

 

 

 

 

 

 

 

 

60일째

 

아침부터 병원을 뛰어 다닌다.

꼴사나우니까 사람이 지나갈 땐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걷다가 눈에서 사라지면 다시 뛰기 시작한다.

눈에 불을 켜고서 찾아보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병원 내에서 사용하는 IC 카드가 없다.

 

카드가 없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병원에 도착하고서 옷을 갈아입기 전에 책상에 있는 자료를 가지러 방으로 들어간 순간.

주머니에 넣었다고 생각한 카드가 없었다.

각 시설의 열쇠이기도 한 카드가 없다.

이래서는 어느 곳에도 드나들 수가 없었다.

 

신청을 하면 예비 카드를 빌릴 수야 있다. 새 카드도 내일이면 나올 테고.

하지만 그랬다간 상사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 일을 가지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잔소리를 지껄일 게 뻔했다.

 

그런 상황에 놓이는 건 사양하고 싶다.

 

 

 

어디에 떨어뜨린 걸까.

병원 안에서 지나쳤던 장소와 길은 이미 찾아보았고, 분실물 신고도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밖에 떨어뜨렸다는 것인데.

그러면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을 거란 생각에 어깨의 힘이 축 처졌다.

 

어른답게 잔소리를 듣는 수 밖에 없겠어.

 

분명 지금의 나는 세계의 종말을 맞이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머리를 누르고 한숨을 토해낸들.

우울함은 가시질 않는다.

 

발길을 돌려 사무실에서 임시 키를 신청하기로 했다.

뒤돌아서는 순간 무언가와 충돌했음을 느꼈다.

시야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배 주변에 무엇인가 닿은 감촉.

 

그리고 동시에 한 순간 작은 소리가 들렸다.

 

나와 부딪힌 그것은 반동으로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고서 고개를 숙였다.

 

「앗, 괜찮아? 미안해. 갑자기 서버려서 부딪히게 한 모양이구나.

 

손을 내밀자 숙이고 있던 고개가 이쪽을 향해 올려다본다.

 

밝은 색 머리를 한쪽으로만 사이드 포니테일로 묶었다.

동그랗고 예쁜 하늘색 눈동자.

매우 심플한 복장은 어쩌면 입원한 아이가 입는 파자마일 것이다.

나이는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인다.

 

내민 손을 잡을 생각은 안하고, 손바닥을 몸 옆 바닥에 붙인 채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어 저기어디 아픈데 있니? 일어설 수 있겠어?

 

일단은 일어나기를 재촉하듯 말을 걸자 하고 정신이 들었다는 듯이 그 아이는 깡총 일어 섰다.

한 순간 물러났다가 다시 다가오기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애네하고 생각하며 바라보자.

 

갑자기 배 앞을 향해 양손을 들이밀었다.

그 아이의 손을 보니 거기엔 내 IC카드가 놓여 있었고, 놀라서 아아!’하고 소리를 내며 아이를 깜짝 놀래키고 말았다.

 

, ? 이거 어디 있었어? 고마워. 곤란해하던 참이었거든. 정말로 고마워

 

너무나 기뻐서 그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는데.

당황하며 뒤로 홱하니 물러섰다.

 

「에엣, 갑자기 쓰다듬으려고 해서 미안해

 

그 아이의 얼굴이 약간 슬프게 일그러져서 왠지 이 분위기, 감각에서 익숙함이 느껴졌다.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있어서 말을 조금 걸어보기로 했다.

 

소아과에 다니지? 이름이 뭐니?

 

나도 모르게 이름을 묻긴 했지만, 그 아이는 그 순간 안절부절 못해서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무것도 못 찾아서 초조해하는 듯한, 그런 모습.

당황해 하는 모습은 귀엽고, 어딘가 강아지를 닮았다.

 

근처에 있던 매점으로 달려가 과자 코너로 들어간다.

그 모습을 쫓아가자, 어째선지 전병 앞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아이가 보인다.

 

“…먹고 싶어?”

 

순간 멀뚱하니 이쪽을 바라보더니 이해했는지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며 부정한다.

그 전병 포장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시 이쪽을 바라본다.

                                               

「호노카()…。호노카 라는 이름이구나?

 

열심히 패키지에 적힌 상품명을 읽고서 이름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기뻤는지 수줍게 웃기에 아마도 그게 정답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도 말을 안 해준다니어쩌면 말을 못하는 아이일지도 모른다.

입원 생활을 하는데 말도 못하고, 아침부터 혼자 있으려니 분명 쓸쓸할 테지. 하고 멋대로 상상한다.

 

「호노카는 입원 중이니?

 

또 다시 멀뚱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부정.

어딘가 강아지처럼 좀스러이 움직인다.

 

입원 중이 아니라면 통원치료 중인 건가?

, 너무 깊게 파고드는 것도 미안하니까 질문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자.

 

 

 

사례로 뭐든 사줄게. 좋아하는 거 골라봐.”

 

표정이 화악 밝게 펴진다. 아이는 후다닥 뛰어가 안쪽 찬장에서 빵을 하나 가져왔다.

손에 든 것은 쿠페빵 하나.

 

그것만? 빵이면 돼? 다른 건?

 

기쁜 얼굴로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뛰어갔다 돌아온다.

빵 옆에 안고 있는 팩 우유를 보자 무언가가 무심코 떠올랐지만, 데자뷰일 것이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기다리기에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계산대에서 계산을 마쳤다.

 

가슴에 빵과 우유를 안고서 매우 기쁜 표정을 짓던 아이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내 곁으로 뛰어온다.

가슴에 안고 있던 빵과 우유 때문에 내밀려 안간힘을 써도 손을 내밀지 못하는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는다.

하지만 이번엔 도망가는 일 없이 내가 내민 손을 가만히 보더니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내밀었고, 그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쓰다듬다 보니 어느새 내 손이 점점 뺨으로 다가가는 것 같아 어쩐지 부끄러워 나도 모르게 쓰다듬던 손이 멈췄다.

그걸 보고 마치 에헤헤하고 말하듯이 웃어 보이자, 그 아이는 빵을 안고서 나와는 다른 방향을향해 갔다.

 

바로 거기엔 계단 입구가, 너머가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었다.

그 아이는 멈춰 서서 나를 향해 돌아 보았다.

 

입이 부드럽게 움직이다 다시 닫히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준비하고 있는 듯한.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자, 역시 위화감이 느껴졌다.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문득 시선이 마주치고, 그 입은 다시 움직였다.

 

마키짱, 고마워

 

그 말을 남기고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내가 이름을 가르쳐줬던가?

 

 

 

그보다.

 

방금 전의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다.

아이가 걸어갈 때마다 귀를 자극하던 소리도.

 

아무리 생각해도 들어본 기억이 있다. 두 소리 모두.

 

 

묘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그 소리와 목소리 모두 요즘 내가 찾고 있었던 것들.

 

 

 

 

어쩌면 깊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를 그런 것.

멀리서부터 귀에 익숙한 작은 소리가 들렸다.

 

 

나의 아주 소중하고 작은 말동무.

오늘, 그 아이를 발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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