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달나라 왕자님

글: 스즈키 오사무(鈴木おさむ)

출처: monogatary.com/episode/109217

 

(주제: 머그컵을 주인공으로 쓴 이야기)

 

※YOASOBI의 노래 <하루카ハルカ>의 원작 소설입니다.

 

 

추억이 떠오르네.

16년 전 후쿠오카의 번화가 텐진에 있는 잡화점 "파인" 선반 제일 구석에서 말야,

먼지를 잔뜩 먹은 나를 하루카(遥)가 발견해 줬지말야.

 

그 때 하루카는 중학교 2학년 14살 소녀였어.

 

친구랑 셋이서 텐진 거리에 놀러 나왔다가

우연히 들어가 본 그 가게에서

나를 발견해줬지.

그 가게에 5년이나 넘게 눌러앉아있는 동안

나를 사고싶어하는 사람이라곤 단 한 명도 없었어.

 

그야 뭐 나도 맨 처음엔 선반 제일 앞 줄에 앉아있었지만.

 

나를 보며

「이 머그컵 엄청 좋은데~!」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라곤 단 한명도 없었어.

 

내 몸엔

「어린왕자」 비슷한 느낌의 일러스트가

그러져 있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어린왕자」가 아니라

「달나라 왕자」였지만.

작은 별 위에 앉아있는 어린왕자랑은 미묘하게 다르게.

달 위에 앉아있는 왕자님이었어.

「어린왕자」랑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도는 나를 보고 다들

「뭐야 이거. 어린왕자 짝퉁아냐~」라고 웃으며

그 누구도 사주질 않다보니 점점 선반 안쪽 구석으로 내몰리고 말았어.

 

게다가 내 몸은

도자기다보니

좀, 아니, 무거운 편이잖아.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쉽게 깨져버리기 마련이었지.

내 주변에 있던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잘 안 깨지는 머그컵들이

자꾸만 팔려나가서

나는 홀로 남아버리고 말았어.

 

가게 주인 할머니가 말야

어느 날 나를 보곤

「아이구 정말이지 넌 인기라곤 하나도 없구나」라고 말했지 뭐야.

그 말을 듣고나서 너무나 풀이 죽어버렸어.

스스로도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로 인기가 없다는 실감이 들었거든.

가게 선반에 진열할 수 있는 물건 수엔 한계가 있으니까

이대로 계속 안 팔려나간다면

조만간 폐기가 되겠구나 싶더라구.

솔직히 그 땐 스스로도 완전히 포기해버렸고

인기 없는 내 자신에게 너무나 실망하고 속상했어.

그랬던 나를 하루카가 말야, 선반 구석에서 나를 발견해 준 거야.

 

「와 이거 맘에 들어!」

라며.

 

곁에 있던 친구들은

「하루카 진짜 센스 이상하다니까」

라고 말했지만

하루카는 내 몸을 꼬옥 붙들고서

 

「이거 봐. 달님 위에 왕자님이 앉아있잖아. 재미있지 않아?」

라며 웃어주었어.

 

'귀여워' 가 아니라 '재밌어'라고.

하루카는 그렇게 말했어.

그렇구나. 난 웃기는 녀석인가보다.

그 때 처음으로 깨달은 거야.

 

하루카는 진짜로 날 사 주었어.

정말이지 너무너무 기뻤어.

방방 뛰고싶을 정도로 기뻤어.

방방 뛰다가 떨어지면 깨질테지만

그 정도로 기뻤다구.

목이 빠지게 기다렸던 날 사 줄 사람이 드디어 나타났으니까.

 

하루카가 처음으로 나를 보고 싱긋 웃어주었을 때 그 미소는 절대 못 잊을 거야.

「재미있다」고 말한 그 말도 잊지 않을 거야.

그런 나를 사 주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카를 위해서라면 뭐든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내 멋대로 맹세를 했어.

별거 아닌 일엔 절대 깨지지 않을테야! 라구.



하루카는 말야, 나를 집에 데려온 후로

내게 여러가지 음료를 넣어 마시며

소중히 다뤄주었어.

그렇게나 좋아하는 사과주스를 넣어서 마시기도 하고

아침 저녁 양치질을 할 때도

내게 물을 넣어 사용해주기도 했어.

 

하루카네 집에 온 지 1년 정도 지난 후에는

하루카가 내게 그렇게 좋아하는 사과주스를 넣어서 마시는 걸 그만두었어.

하루카가 15살, 중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

매일 늦게까지 수험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지.

내게 따스한 차를 넣어서 공부를 하곤 했어.

 

그 땐 차가 식지 않도록

나두 온 힘을 다해서 노력했었다.

 

「절대 안 식게 할 테야-!!!」

하고.

 

그 시절 하루카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

매일 공부를 하고, 모두가 들어가기 어려울거라 말했던 고등학교에 떡하니 붙었지.

합격 소식을 들은 날, 하루카와 가족 모두가 축하 파티를 했는데,

하루카는 합격할 때까지 절대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사과주스를 내게 넣어서

마셨어.

그 때 말야, 나를 보고 있던 하루카네 아버지 어머니가 말씀했었지.

 

「여기 왕자님이 같이 힘을 내 줘서 붙은 걸 거야」

 

그 땐 정말이지 너무나 기뻤어.

울 뻔 했지 뭐야.

그치만 오랜만에 마시는 사과주스가 밍밍해질까봐 눈물을 꾸~욱 참았어.

 

「하루카. 합격 축하해!」

 

하고 말하며, 나를 붙잡고 있는 하루카의 엄지손가락을 꼬옥 안아줬어.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후에도 하루카는 나를 소중히 여겨줬어.

집에 돌아오면 매일 내게 마실 걸 넣어서 마시곤 했어.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좋아하는 사과주스를 줄이기 시작한 때도 있었지.

 

솔직히 말하자면

하루카네 집에 오고 나서 1년 정도 후엔 버려지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어.

1년 정도 사랑받으면 복 받은거지 뭐.

그치만 하루카는 나를 정말 소중히 사용해 줬어.

 

하루카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너무나 행복했어.

 

하루카가 고2가 되었을 때, 내게 사과주스를 넣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는

뭔가 즐겁게 전화하는 걸 듣고 알아챘어.

 

「앗.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구나」라고 말야.

살짝 질투도 났어.

하지만 그 이상으로 기뻤다~.

하루카가 사랑을 한다는 걸 알게 된게 말야.

 

고3이 되고 나서 하루카는 대학 진학을 결심하고

다시 매일 내게 차를 넣어 마시면서 공부를 했지.

매일 새벽 3시까지.

나도 내 나름대로 매일 응원을 보냈어.

 

「하루카, 힘내!」

 

「하루카 파이팅!」

 

역시나 하루카는 대단했어.

끈기가 있다니까.

멋지게 대학에 합격해서 도쿄에 가게 되었지 뭐야.

진심으로 하루카를 축복했어.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제 이별을 하겠구나 싶었어.

하루카는 도쿄에 가야 하잖아.

축복과 동시에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게 본심이었어.

 

하지만 말야, 하루카는 나를 데리고 도쿄까지 가 주었어.

설마 같이 데리고 갈 줄은 꿈에도 몰랐지 뭐야.

분명 고향집에 두고 떠날거라 생각했어.

그치만 하루카는 나를 데리고 떠났어.

 

하루카는 새로운 여행길을 떠나는 동무로 날 선택해 주었어.

그래서 그 때, 도쿄에 가더라도 반드시 하루카를 지키고 말거라고 결심했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왕자님일지도 모르지만

내 나름대로 하루카를 지키겠다고.

응원하겠다고.

 

도쿄 산겐자야(三軒茶屋)에 있는 자그마한 빌라에서

하루카는 자취생 생활을 시작했지.

 

아무래도 도쿄에 오고 한 동안은 쓸쓸했을 거야-.

그야 그럴만두 해.

갑자기 가족들과 떨어져서 혼자 산다는 게 말야.

생소한 마을에서 살면서, 그런다고 친구가 바로 생기는 것두 아니구.

 

그래서 말야, 내 나름대로

하루카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었어.

 

「하루카. 넌 혼자가 아냐! 내가 같이 있다구!」

라고.

 

내 목소리가 하루카에게 들리기라도 했던 걸까. 아냐 분명 들었을 거야.

집에 쓸쓸히 있을 때도 말야

하루카는 내게 사과주스를 넣어 마시고 난 다음에

나를 보며 미소를 지어주었거든.

 

그니까 분명히 내 목소리를 들었을 거라고 믿어.

 

외로워보이는 하루카의 얼굴은 점점 미소가 피기 시작했어.

도쿄에서도 하루카의 새 친구들이 점점 많아졌지.

도쿄 생활도 익숙해졌구,

집에서 쓸쓸한 표정을 짓는 일도 사라졌어.

 

그리구 말야. 드디어.

대학교 2학년 때 남자친구가 생긴 거야.

같은 동아리에 다니는 애래.

 

처음으로 집에 남자친구가 왔을 때, 하루카가 가슴을 콩닥콩닥 졸이며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

그 땐 나까지도 진짜 엄청나게 두근거렸으니까.

왠지 내가 더 부끄럽네.

남자친구가 집에 들어왔을 때 "안녕~" 하고 인사하고 싶은 기분이었어.

 

하루카도 어쩐지 부끄러워 하구 말야.

내게 사과주스를 넣어서 책상에 올려뒀더니

남자친구가 잘못 알고 나를 들고 마시는 거야. 그랬더니 하루카가 "아 그거 내 건데" 라고 말리더라구.

남친이 "미안" 이라 말했구.

그 다음 하루카가 내게 든 사과주스를 마시는 걸 보고 생각했어.

 

「간접 키스잖아~」라구.

 

하루카가 처음으로 사귄 남자친구.

처음으로 보게 된 하루카의 표정.

진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이런 표정을 짓게 되는구나.

집에 있을 때에도 남자친구를 생각하며 음악을 듣기도 하고 말야.

그래서 난 하루카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빌었어.

 

그치만 반년이 지나고 말야.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말았어.

 

남자친구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상대가 하필이면

하루카의 친구였지 뭐야.

 

그 놈은 하루카가 아니라 친구를 선택했고

친구도 하루카에게 "미안해" 라며 사과하곤

그 녀석과 사귄 거야.

그 놈과 친구 둘 다 동시에 잃고 만 거지.

 

하루카는 방에서 울었어.

세상이 끝나도록 울었어.

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어.

그 놈을 무지막지 패 주고 싶었어.

 

「이 자식 우리 하루카를 울렸겠다아!!」

하고.

 

하루카는 말야.

울고

또 울고

또 울면서

내게 물을 가득 넣고는……

 

단 숨에 꿀꺽 마셨어.



그리곤 하루카는 외쳤어.

 

「하루카 파이팅!! 절대 지지마---!!!」

 

라고.

물을 단숨에 마시고는 하루카는 눈물을 그쳤어.

 

그리고는 나를 보며

「힘내자! 왕자님!」

이라 말했지.

 

역시 내 목소리를 들었던 거지?

하루카.



하루카는 대학을 나온 후 은행에 취직하게 되었어.

역시 하루카는 대단해.

하루카는 성실하니까.

취업준비를 할 때도 남들의 배는 노력했거든.

산겐자야에서 직장이랑 가까운 나카노(中野)로 이사를 하기로 했어.

아무래도 이번 이사 때는

진짜로 작별이겠구나 싶었어.

자취방 쓰레기 정리를 할 때

혼자 속으로 안녕이라 말했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하지만 하루카는 이번에도 나를 데리고 가 주었어.

 

나카노의 새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를 꺼내고서는

「왕자님, 여기가 바로 우리가 살게 될 새 집이랍니다~」

랬지.

 

하루카가 취업을 하고 나서는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어.

아침 일찍 나가서 밤이 늦도록 일했지.

집에 돌아오고

화장을 채 지우지도 못한 채

지쳐서 잠드는 날도

많았어.

 

나는 자주 말하곤 했어.

「하루카―――

오늘 진짜 수고했어ーーー。

잘 자 좋은 꿈 꿔ーーーー」

라고.

 

그렇게 하루카는 점점 어른이 되어갔지.

집에서 지금 이상으로

수 많은 하루카를 볼 수 있었어.



하루카가 웃는 모습

 

우는 모습

 

화내는 모습

 

속상해하는 모습

 

머리 속이 넘치도록 봐왔어.

 

하루카가 웃을 때면 나도 웃을 수 있었고

 

하루카가 화를 내면 같이 분노했고

 

하루카가 울 때면 나도 슬픈 심정이 돼.

그치만 그럴 때면 달래주고 싶어.

 

그리고 다시 웃는 거야.



28세가 되었을 때였지.

하루카가 마음 깊이 좋아하던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왔어.

타케루 군이라고.

일하면서 알게 된 2살 연상인 사람.

처음으로 타케루 군을 보았을 때 생각했어.

 

「이 녀석이라면 괜찮겠어!」

라고.

 

그리고 말야……

하루카가 30세가 되었을 때

결혼식을 올렸어.

 

타케루 군은 말야 처음 집에 왔을 때 나를 보곤 말했어.

 

「꽤 오랫동안 쓴 건가봐?」

라고.

 

그랬더니 하루카는

 

「응. 중학생 때부터. 내 남친 같은 존재야.」

라고 말했어.

 

그 말을 듣고 난 생각했지

 

「으앙 부끄러~~~ 그만해~~~」

라고.

 

그치만 말야, 왠지 좀 기뻤어.

 

그 말을 들은 타케루 군이 말야

 

「그럼 나도 지지 않게 노력해야겠는 걸」

이라고 말하더니

하루카에게

쪽 하고 키스를 했지 뭐야.

 

뭐야아~~~

질투나게시리~~~~

 

그치만 말야

역시 하루카는 말이지

기뻐하는 표정을 지을 때면 나도 기뻐진다구.

하루카의 기쁨이 바로 내 기쁨이었어.



결혼식 날.

하루카는 자기가 앉은 자리 앞에 나를 놓아 주었어.

사과주스를 넣어 마셨지.

 

타케루 군과 손을 맞잠고 웨딩케이크를 자를 때……

나 큰 소리로 외쳤다.

 

「하루카. 결혼 축하해애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결혼하고 하루카는 아내가 되었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도 나를 또 데리고 가 주었어.

 

고마워.

하루카.

이렇게 된 이상, 하루카를 죽을 때까지 지킬 거야.

그렇게 맹세했어.

 

하루카와 타케루 군은 결혼하고 부부가 되었지.

가족이 된 거야.

하루카의 얼굴은 결혼하고 나서 점점 변해갔어.

하루카가 정말로 타케루 군을 사랑한다는 걸 알 수 있었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니, 왠지,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내가 있었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나 멋진 일이구나 싶었어.

 

하루카랑 타케루 군 모두, 새로운 생명을 갖기를 소망했어.

아기를 갖게 해 달라고.

나도 열심히 빌었어.



그랬더니 말야, 결혼하고 1년 후에

하루카의 몸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었어.

 

집에 돌아온 타케루 군을 보고 하루카가

 

「아기가 생겼어」

 

라고 말했을 때 말야, 타케루 군도 기뻐했어.

방방 뛰면서 기뻐했어.

나도 타케루 군 만큼이나 기뻐했다.

진짜 엄청 많이 기뻤어.

 

하루카의 엄지손가락을 꼬옥 안아주며

「잘 했어ーーーーー, 하루카――――――」

라고 외쳤어.



2주일이 지나고 난 일이었어.

하루카가 울면서 집에 돌아온 거야.

 

타케루 군은 일을 나가서 없었는데

하루카가 계속 울어서

나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하고 걱정했어.

 

그랬더니 타케루 군의 전화가 와서

하루카는 눈물을 참으며

타케루 군에게 말한 거야.

 

「아까 병원에 갔더니

안타깝지만 이제 아이와 작별을 해야한다고...

라고.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았어.

하지만.

하루카가 아무리 참아도 눈물이 나왔어.

 

「미안해……」

라 말하며 전화를 끊었어.

 

사과하지 마.

하루카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하루카 잘못이 아냐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하루카는 전화를 끊고는

소리를 내며 울었어.

울고 또 울고

울다가 쓰러지고

 

난 너무나 분했어.

아무것도 해 줄수 없는 내가.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에 짓눌려 쓰러질 것 같은 하루카를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어.

 

하루카는 소파에 앉아 울고 또 울고 그러다 울다 지쳐 그대로 잠이 들었어.

 

자다 깨면

다시 울다가……

 

부엌으로 오더니 울면서 나를 붙잡았어

 

그리곤 수도꼭지를 비틀어 내게 물을 가득 담고는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어.

 

그래서 난 하루카의 엄지손가락을 꼬옥 안고서 온힘을 다해 외쳤어.



「하루카――――! 

파이팅ーーーー! 

파이팅ーーーー! 

파이팅이야ーーーーー! 

하루카는 잘못 없어.

그리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이번엔 안타깝게도

하루카 뱃속의 아이는

한번 하늘 나라로 갔겠지만

언젠가 다시, 반드시 하루카 곁으로 와 줄거야.

그러니까 힘내, 힘내, 하루카 힘내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하루카는 울면서 천천히, 천천히, 물을 다 마셨어.

그리고는 나를 보며,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있는 힘껏, 내게 미소를 지어보였어

 

「고마워. 왕자님.」

이라 말하며.

 

그런 슬픈 일이 있고 나서 1년이 지났고.

하루카 몸속에 다시 생명이 싹튼 거야.

나는

「아가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돌아와줬구나ーーーーー」

라고 생각했어.

 

하루카 뱃속에 다시 생명이 깃들고,

나는 뱃속의 아이를 향해 언제나 말을 걸었어.

 

「또 엄마를 슬프게 하면 안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꼭 매달려있어야 해!

꼭 붙어서 엄마 몸에서 살다가 나와서

네 얼굴을 보여주는 거다. 꼭이다----

라고.

 

하루카의 배는 점점 커다래졌어.

그리고 태어난 거야. 하루카와 타케루 군의 아이.

 

히로키.

그래 바로 너야.

 

하루카가 출산 후 퇴원하고서 히로키가 처음으로 집에 왔을 때 말야.

히로키 넌 나를 바라보있어.

나를 알아챈 거야.

나를 보고 웃었잖아.

 

그 날 부터 가족이 한명 더 늘어 난 거야.

하루카랑 타케루 군이랑 히로키.

 

히로키가 태어나고 나서부터

하루카는 정신 없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쩐지 행복해보였어.

인간은 참 대단한 것 같아.

굉장한 스피드로 성장하니까.

엉금엉금 걷는가 싶더라니

우뚝 서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걸어나가는가 싶다가

말도 하게 되었어.

 

히로키는 말야.

나를 보고 웃어주었어.

왠지 말야, 내 멋대로 상상한 거지만

난 히로키에게 우정을 느끼게 되었어.

하루카는 이따금 내게 사과주스를 넣어서

히로키에게 먹이곤 했어.

 

그리고 말이지.

히로키가 3살 생일을 맞은 날.

바로 오늘이지.

 

히로키가 소파 위에 위에서

사과주스를 넣은 나를 양손에 붙들고 마시는 거야.

하지만 히로키는 잘못 없어.

내 몸이 약간 무거워서 어쩔 수 없었던 거야.

히로키가 나를 든 채로 일어서려다가 균형이 무너져서 소파에서 떨어질 뻔 했거든.

나를 든 채로 있으면 히로키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질 거야.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난 온 힘을 다해 히로키의 손을 뿌리치며 벗어나려 했어 

 

「히로키, 나를 놔야만 해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히로키는 소파에서 떨어지고 말았어.

하지만 다행히 두 발이 먼저 떨어졌지.

히로키는 바닥에 넘어졌고, 하루카는 히로키 곁으로 얼른 달려와

 

「괜찮니?」

하고 히로키를 안아주었어.

 

다치진 않은 모양이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하루카의 소중한 것을 지켜냈으니까.

믿음직하지 못한 이 왕자님이 말야.

마지막엔 조금이나마 왕자님 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었어.

 

하지만 히로키는 다치진 않았지만

내 모습을 보곤 울음을 터뜨렸어.

 

히로키의 손에서 벗어나 바닥에 떨어진 내 몸은

깨지고 말았거든.

정 가운데가 쩍 하고 두동강이 나 버렸어.

손잡이 부분도 떨어지고

가장자리 일부는 가루가 되고 말았어.

 

히로키는 깨져버린 내 몸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 거였어.

「뿌서져버렸어」

 

하루카도 깨져버린 내 몸을 주워들며

눈물을 흘렸어.

 

히로키는

「엄마, 미안해요」

하고 울면서 사과했어.

 

그래서 히로키에게 외쳤어.

「히로키ーー! 

안 울어도 돼.

울면 못써!」



히로키!

난 말야, 네 엄마가, 하루카가 14살일 때 만나고 나서부터

지금껏 소중히 대해 주었단다.

 

중학생이었던 엄마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아빠인 타케루 군과 만나서 사랑을 깨닫고.

 

그런 모습들을 말야, 계속 계속 옆에서 봐왔어.

내 멋대로 맹세한 일이긴 하지만 네 엄마를 지켜온 셈이야.

 

그런 네 엄마는 말야, 지금 자기 목숨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는 게 있단다.

바로 너야. 히로키.

그러니까. 정말 괜찮아.

내가 없어도 괜찮아.

 

왜냐면 히로키, 네가 있기 때문이거든.

 

히로키, 부탁한다.

앞으로 엄마 곁에서

엄마를 지켜줘야 한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화내고

그러다 다시 함께 웃어주렴.

 

내 대신에 엄마를

계속 계속 계속 지켜줘야 한다.

 

그리고.

하루카, 울지 마.

하루카.

하루카.

하루카……

 

그 날 잡화점에서 나를 데리고 가 줘서 고마워.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나를 발견해 줘서 고마워.

하루카의 행복이 바로 내 행복이니까.

 

수 많은 행복을 나눠 주어서 고마워.

 

바이바이.

 

난 이제부터 달님 위에서

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을게.

사랑해.

 

달나라 왕자님이

 

〜END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